태초에 Palm이 PDA를 창조하시니라

Palm OS가 PDA의 시초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고, 대중화를 시켰다고 말하기에는 애당초 PDA라는 물건 자체가 Geek들의 장난감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힘들다. 다만 PDA의 역사에 있어서 Palm을 빼놓을 수 있을까.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의 부흥기 이전에 Windows Mobile과 함께 시장을 양분했던 OS로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OS였다는데는 모두 동감할 것이다. 그런 Palm이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Treo 라인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도태된 후 오랜기간의 개발을 거쳐 출시한 것이 webOS다.

그래서 뭐가 좋은데

webOS의 장점으로 꼽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카드 뷰
  • 제스쳐 바
  • Web-based App

Martias Duarte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webOS의 UX의 특징이 저 위의 두가지이다. 아이폰은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했고 안드로이드는 메모리 문제로 허덕이며 최근 실행했던 앱들의 아이콘만 보여주던 시절, (당시 기준으로)완벽한 멀티태스킹이라는 이야기를 듣던 카드 뷰. ICS 이후의 안드로이드에서 1Column List로 앱들을 표시하는 것처럼 하나의 카드로 하나의 앱을 표시하고 좌우 스와이프로 다른 앱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앱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미리보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했었다. Mojo(1.x)에서 Enyo(2.x)로 넘어오면서 카드들을 쌓아서 그룹(Stack)으로 만드는 기능도 추가되었고, 그 카드들을 단지 위로 살짝 스와이프하는게 앱을 종료하는 것이었다. 앱을 실행하다가 홈버튼을 눌러서 카드 뷰를 보고, 화면 어디든 좌우로 스와이프해서 어떤 앱들이 실행되고 있는지 앱을 이동하면서 살펴보고 살짝 위로 올려서 앱을 끄고. 왼손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엄지손가락 단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전/이후에 쓰는 앱들은 홈버튼의 좌/우로 크게 스와이프하면 화면 전체가 좌/우로 스르륵 이동하면서 이전/이후 앱으로 자연스럽게 바로 넘어갈 수 있다. 윈도우를 쓰면서 alt + tab, alt + shift + tab을 눌러서 바로 넘어가듯이. (물론 윈도우에서 멀티태스킹 바가 뜬다는 차이가 있지만) 버튼을 최소화하며 직관력을 높이는 대신에 선택한 제스쳐 바.

그리고 WebApp이라는 개념도 막 등장하기 시작하고 Web Application이라고 HTML+JavaScript로 브라우져 화면을 어플리케이션처럼 쓰는 개념이 있던 시절, HTML을 기반으로 앱을 만든다는 컨셉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개발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Web Developer (특히 front-end developer)를 새로운 생태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항상 하던 그대로' 만들면 그것이 바로 앱이 되는 환경이었다. 이건 소비자 관점이라기보다 개발자 관점이라 크게 장점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webOS의 이름에 걸맞는 특징이자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그 이외에 OS 측면은 아니지만 터치스톤이라는 충전기를 들 수 있다. 현재 노키아 루미아 920 등에 탑재된 것과 같은 방식의 무선 충전으로 넥서스4의 무선 충전기와 거의 같은 모양의 반구형으로 자석이 달려있어 폰을 그 근처로 '대충' 놓으면 자석이 알아서 폰을 가운데로 착 붙여준다. 충전을 하기 위해 케이블을 찾을 필요도 없고 정확히 맞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적당히 폰을 가까이에 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터치스톤에 올려놓으면 Exhibition이라는 앱이 실행되는데, 일정을 출력하거나 갤러리에 있는 사진들을 슬라이드쇼로 보여주거나 혹은 거대한 시계를 보여주는 등 요즘의 스마트폰에 정식으로 제공되는 독에 꽂았을 때 나오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럼 왜?

PreCentral이라는 webOS의 제일 큰 커뮤니티(현재는 webOS Nation)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거론하는 webOS의 실패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마케팅과 마켓의 부진
  • 저스펙
  • HP의 외면
    • 무리한 터치패드 출시
    • R&D의 부재

이야기는 스프린트의 독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미국 시장의 반이상을 과점하고 있으며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내세우던 AT&T, Verizon과 다르게 스프린트는 스마트폰을 내지 않던 '한물 간' 통신사였다. 게다가 보통 출시 이전에 SDK(Software Development Kit; 개발자들이 앱을 개발하기 위한 도구)를 배포해야하는데, 출시와 맞물려 배포하는 바람에 첫 모델인 Pre를 사람들이 손에 쥐고도 쓸 데가 없었다. 몇달이 지나서야 앱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미 사람들에게 Pre에 대한 인식은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폰'으로 인식되며 안팔리기 시작하며 스프린트 또한 전력으로 흥보하지 않았다. 광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팔리지 않았는지, 앱 때문에 안팔려서 광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앞뒤는 불분명하지만 마켓의 부진과 마케팅의 부진 모두 일어난 사실이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Verizon으로 넘어가면서 Pre Plus라는 Pre에서 개선된 모델을 내면서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결심한 webOS는 광고대행사Modernista를 통해 집중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나온 광고를 보시라.

'엄마도 쓸 수 있는 스마트폰(The 3G smartphone smart enough for mom)'이라는 카피라이트로 대중에게 다가서려고 했지만 결국 '한물 간 폰'이라는 인식으로 마케팅에서 크게 실패했다. 참고로 팬이 만들었던 광고를 한번 보면 저 광고가 얼마나 잘못 전달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전히 개발자들이 혹할만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front-end 개발자들에게 앱의 life-cycle이라는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고, 보통의(traditional) 개발자들에게는 web 언어란 잘 사용하지 않는 하나의 장벽이었을뿐이다. 그렇게 Pixi, Pixi Plus, 그리고 Pre2로 이어지는 Palm의 실패는 계속 되었다. 인기없는 브랜드니만큼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고 원가절감이 힘드니 계속 한세대 늦은 스펙들로 내놓고 최후에 내놓은 Pre3는 플래그쉽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HP의 인수와 함께 webOS는 태블릿으로 전환기를 맞이했다. 아니 하려고 시도는 했다. 하지만 위에서 썼던 webOS의 장점 중 '제스쳐 바'는 없었다. 한손으로 쥐고 한손으로 가볍게 쓸 수 있는 가볍고 명확한 인터페이스에서 절반이 사라진데다가 단순히 확대된 UI만 존재할 뿐이니 제대로 된 OS의 장점을 전달 할 수 없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말하는 터치패드의 '무리한 출시'라는 말이 이것이다. 폰에서 장점이었던 UI가 태블릿에 녹아들지 못한채 그냥 출시한 것. 이미 Martias Duarte는 떠난 뒤고 그의 뒤를 이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항상 webOS의 단점으로 꼽히던 성능. HTML을 그대로 하나의 브라우져처럼 렌더링하는 구조이다보니 WebApp이 가지는 성능상의 문제가 전체 앱들에서 드러났다. 요즘에 등장하는 HTML5의 Canvas 기반의 웹게임들도 데스크탑에서 성능 문제가 있는데 하물며 한세대 이전의 스펙을 가진 폰에서는 어떨까. 게다가 브라우져 기반이라는 것은 실행 초기에 HTML Document를 모델링하는 것때문에 앱이라고 보기에는 실행 속도 자체의 문제도 있었다. 그럼 이의 대안은 없었던 것일까? HTML로 앱을 만들어서 각자의 플랫폼에 맞게 만들어주는 하이브리드 앱들은 그 당시에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하긴 하지만 그 당시에도 굉장히 개념적으로만 괜찮은(conceptual) 것들이었는데, 이런 개념이 차후 Windows RT에도 들어있다. HTML/JavaScript/CSS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면 bytecode로 해석해서 돌려주면 브라우져가 가지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었다. 물론 브라우져가 가지는 유연성을 모두 지원하기에는 힘들지라도 어차피 다른 플랫폼의 API와 언어를 익히는 것보다 front-end 개발자들에게 어필한다는 컨셉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 왜 이 문제를 해결하려들지 않았을까? HP가 Palm을 인수한 것은 2010년 4월이다. 그리고 2010년 10월 Pre 2가 Palm의 브랜드를 달고 출시를 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0년 8월에 Palm을 인수했던 Mark Hurd가 사임하고 악명높은 Léo Apotheker가 후임으로 CEO에 취임했다. 과연 Palm을 인수했을 때의 로드맵이 유지되었을까? Pre와 Pixi의 실패 요인을 그대로 안고 있던 Pre2가 그대로 발매되었는데 성과가 좋을 리 없었다. 인수 전에 거의 개발이 끝나긴 했지만 인수 후의 첫 제품이 실패했다. 게다가 이전 CEO가 추진했던 사업인지라 내부에서 회의론이 많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webOS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위에 없었으니 터치패드를 개발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니만큼 내부에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또한 미비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LG가 webOS를 스마트TV에 넣기 위해 인수했다. 그런데 이 인수 내용을 살펴보면 인수라고 보기가 힘들다. 이제 LG는 webOS의 기기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마련하기는 했다. 개발팀, 웹사이트, 소스코드, 관련 기술 등. 하지만 그 뒤에 있는 것들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OS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앱 카탈로그(webOS의 마켓스토어)를 비롯한 클라우드 기반의 백엔드에 관련된 팀과 webOS와 Palm에 관한 특허는 얻지 못했고 사용권(라이센스)만 얻었다. webOS 기기를 개발할 수는 있지만 온전히 갖지는 못했고 제1의 제조사(first-tier vendor) 정도의 지위를 얻었다. 과연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일단 LG에게 있어서는 비용 절감과 더불어 리스크를 안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마켓을 비롯한 생태계의 유지에 큰 비용이 든다. 이를 HP에 남겨둠으로써 LG는 플랫폼의 흥망성쇠에 대한 리스크를 덜 감수해도 된다. 문제는 성공에 따른 이득 또한 크게 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로우리스크, 로우리턴. 그것이 LG의 결정으로 보인다.

그리고 webOS 자체에 있어서는 큰 기회다. 일단 LG에서 인수(사실상은 사용권 독점)를 통해 광고 효과를 톡톡히 봤으니 이를 실제 기기로 이어지게 할 것이니 오픈소스 커뮤니티로 이전, 아니 사장된 후로 처음으로 다시 빛을 볼 기회가 온 것이다. 문제는 빛을 본다고 해도 과연 이전의 실패라는 전철을 되밟지 않을 수 있냐는 것이며 그 기회가 과연 webOS에게 어울리냐는 것이다.

다시 한번 webOS의 장점으로 돌아가보면, 제스쳐들에 대한 것이 있다. 멀티테스킹 창들을 이동하고 관리하는데 사용되는 제스쳐들. 터치에는 두가지가 있다. 포인트와 제스쳐. 포인트는 정확한 곳을 집을 수 있다는 섬세하다는 장점이 있고, 제스쳐는 어디를 집는지에 관계없이 작동할 수 있다는 유연성이 장점이 있다. TV에 있어서 포인트 터치보다는 제스쳐가 훨씬 어울리지 않는가? 모션센서 내지는 터치패드를 이용해 TV에서 멀티태스킹을 구현할 수 있다면 스마트TV에서 가장 귀찮았던 수많은 방향키 입력을 해소해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능 문제는 남아있다. 과연 LG는 HP 이상의 연구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것을 굉장히 낙관적으로 보는게 한국의 산업구조 특성상 인건비 산정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건비가 없으니 연구개발에 쉽게 시도하는 것이 엔지니어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산업 자체에 대해서는 막대한 유연성과 추진력을 준다.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고 조롱받더라도 그것이 다른 나라들이 하지 못하는데 한국만 가능한 이유를 그 유연성과 추진력,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공밀레 문화라고 본다.

#TODO

이제 소비자가 기대할 것은 실제로 나올 기기이다. 어떤 특허로 어떤 기술이 사용되는지는 사실 소비자와 거리가 멀다. 그리고 LG라는 기업 자체가 소프트웨어에서 그리 강세를 보여주는 기업도 아니었고, '모터달린 것은 LG' 혹은 '백색가전은 LG'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하드웨어에 강세를 보이던 기업이었다. 사실 webOS의 부활 자체 이외에 LG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제품을 낸다고 하니 좋은 제품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